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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곳들이 있어요. 스페인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고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 보고 작은 스쿠터를 타고 골목을 누비는 여행이지요. 이 여행 코스를 전 세계에 알린 건 칠십 년도 더 된 흑백 영화 한 편이에요. 이영화의 주인공은 아직도 아름다운 미녀를 지칭할 때 비교대상으로 나오는 오드리 헵번이에요.
로마의 휴일 속 답답한 공주 앤
앤은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공식 행사를 치르는 한 나라의 공주예요. 하루 종일 정해진 시간표대로 손님을 맞고 연설을 하고 웃어야 했지요. 로마에 도착한 날 밤 앤은 끝없는 일정에 지쳐 울음을 터뜨려요. 의사는 앤을 진정시키려고 잠이 오는 주사를 놓아 주지요. 솔직히 저도 어릴 때는 공주의 삶이 마냥 부럽기만 했는데 이 장면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그런데 앤은 잠들기 전에 몰래 머물던 대사관을 빠져나와요. 약 기운에 비틀거리던 앤은 길가 벤치에서 잠이 들고 마침 그 앞을 지나던 미국 신문 기자 조가 앤을 발견해요. 조는 이 아가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기 집에서 재워 주지요.
다음 날 아침 신문에 실린 공주 사진을 본 조는 깜짝 놀라요. 자기 집 소파에서 자고 있는 아가씨가 바로 그 공주였던 거예요. 조는 이 일을 비밀로 한 채 공주의 하루를 몰래 기사로 쓰기로 해요. 기자가 다른 신문보다 먼저 알아낸 큰 소식을 특종이라고 하는데 조에게는 인생 최고의 특종이 눈앞에 나타난 셈이었어요. 제가 직접 다시 보니 신문을 들고 멍해지는 조의 얼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긴 순간 중 하나였어요.

짧은 머리와 젤라토로 시작된 하루
조의 집을 나온 앤은 제일 먼저 미용실에 들어가 긴 머리를 짧게 싹둑 잘라요. 거울 속 달라진 자기 모습을 보며 활짝 웃는 앤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자유가 느껴지지요. 이때 선보인 짧은 머리는 영화가 나온 뒤 전 세계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어요.
이어서 앤은 스페인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어요. 우연인 척 다가온 조는 앤에게 하루 동안 로마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지요. 두 사람은 작은 스쿠터를 타고 로마 시내를 달려요. 서툰 운전 솜씨로 이리저리 부딪히다 경찰서까지 끌려가는 장면은 웃음이 절로 나요. 제 경험상 이 장면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옆에 두고 보면 앤의 들뜬 기분이 훨씬 잘 느껴졌어요.
이 영화는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로마 거리 곳곳에서 찍었어요. 이렇게 스튜디오를 벗어나 실제 장소에 가서 촬영하는 것을 로케이션 촬영이라고 해요. 그 시절 할리우드 영화는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찍었기 때문에 진짜 로마 풍경이 가득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여행처럼 느껴졌어요.
| 영화 속 장소 | 나오는 장면 |
|---|---|
| 스페인 계단 | 앤이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는 장면 |
| 콜로세움 | 스쿠터를 타고 옛 경기장 앞을 지나는 장면 |
| 진실의 입 | 거짓말하면 손이 잘린다는 돌조각 장면 |
| 트레비 분수 근처 | 앤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장면 |
로마의 휴일 명장면 진실의 입
두 사람은 커다란 돌 얼굴 조각인 진실의 입 앞에 서요. 전설에 따르면 거짓말쟁이가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고 하지요. 사실 둘 다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요. 앤은 공주라는 걸 숨겼고 조는 기자라는 걸 숨겼거든요.
조가 먼저 손을 넣더니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소매 속으로 손을 쏙 감춰요. 깜짝 놀란 앤은 진짜로 손이 잘린 줄 알고 비명을 지르지요. 이 장면은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즉석에서 한 행동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렇게 대본에 없던 행동이나 말을 그 자리에서 해내는 연기를 즉흥 연기라고 해요. 덕분에 앤의 놀란 표정이 연기가 아닌 진짜처럼 생생하게 담겼어요. 솔직히 이렇게 오래된 영화의 장난에 제가 소리 내어 웃게 될 줄은 예상 밖이었어요.
이 영화는 색이 없는 흑백 영화예요. 흑백 영화는 화면을 검은색과 흰색과 회색으로만 담아낸 영화를 말해요. 그런데도 로마의 햇살과 앤의 웃음이 어떤 컬러 영화보다 눈부시게 느껴져요.
흑백 영화 속 숨은 이름의 작가와 빛나는 상
이 영화로 오드리 헵번은 할리우드 첫 주연작에서 미국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받았어요. 무명에 가깝던 배우가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거예요. 영화는 이야기를 만든 원안으로도 상을 받았지요 (출처: 씨제이 뉴스룸). 씨제이 뉴스룸 칼럼 보기
그런데 이 상을 받은 사람의 이름은 원래 작가가 아니었어요. 진짜 작가는 그 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일을 못 하게 막힌 사람이라 친구의 이름을 빌려 대본을 냈거든요. 이렇게 특정한 사람들을 명단에 올려 일자리나 활동을 막는 것을 블랙리스트라고 해요.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진짜 작가의 이름이 되찾아졌어요.
영화 속 스페인 계단은 지금도 영화 팬들이 꼭 찾는 곳이에요. 다만 오래된 계단을 지키기 위해 요즘은 계단에 앉아 음식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니 여행 갈 때 꼭 기억해 두세요 (출처: 미주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로마 여행 기사 보기
하루의 꿈같은 휴일이 끝나고 앤은 다시 공주의 자리로 돌아가요. 기자 회견장에서 가장 좋았던 도시를 묻자 앤은 망설임 없이 로마라고 답하지요. 조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모든 마음이 담겨 있어요. 바쁜 일상에 지친 날에는 앤처럼 나만의 작은 휴일을 선물해 보세요. 제가 이 기자 회견 장면에서 앤의 마지막 눈빛을 볼 때마다 괜히 목이 메어요.
자주 묻는 질문
로마의 휴일은 해피엔딩인가요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요. 슬프지만 서로를 위한 선택이라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결말이에요.
조는 공주의 특종 기사를 썼나요
조는 결국 기사를 쓰지 않아요. 친구가 몰래 찍은 사진들도 앤에게 선물로 돌려주지요. 하루 동안 진심으로 앤을 아끼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흑백 영화라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요
웃음이 많고 이야기가 단순해서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로마 여행을 앞두고 가족이 함께 보면 여행이 훨씬 더 즐거워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