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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화분, 악역, 누아르)

생활나침반- 2026. 9. 30. 10:17

목차


    우유만 마시고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고 매일 화분에 물을 주는 남자가 있어요. 사람을 믿지 않아서 창문 가까이에도 잘 가지 않지요. 그런 남자의 문을 어느 날 한 소녀가 두드려요. 레옹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남자와 모든 것을 잃은 소녀가 서로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가는 이야기예요. 뿌리내리지 못한 화분과같이 둘 사이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마음에 남는 영화였어요.

     

    레옹 (화분, 악역, 누아르)
    레옹 (화분, 악역, 누아르)

    레옹이 매일 돌보는 작은 화분

    레옹은 뉴욕의 낡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남자예요. 겉으로는 조용한 이웃이지만 사실은 돈을 받고 위험한 일을 처리하는 킬러예요.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친구도 없어요. 그가 유일하게 아끼는 건 창가에 둔 초록색 화분 하나뿐이에요.

    레옹은 이사를 갈 때마다 이 화분을 꼭 챙겨 가요. 뿌리가 땅에 내리지 못한 채 화분 안에서만 사는 식물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레옹 자신과 닮았어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인물의 마음이나 처지를 대신 보여 주는 것을 상징이라고 해요. 영화 내내 이 화분은 레옹의 외로움을 말없이 보여 줘요.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볼 때 레옹이 화분을 창가에 내놓고 물을 주는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말이 없는 사람의 마음이 화분 하나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레옹의 화분 곁으로 옆집 소녀 마틸다가 두드린 문

    레옹의 옆집에는 열두 살 소녀 마틸다가 살아요. 마틸다는 가족에게 늘 구박받으며 지내지만 어린 남동생만큼은 무척 아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마틸다가 장을 보러 간 사이 부패한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쳐 가족을 모두 해치고 말아요. 부패는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사람이 뇌물을 받거나 나쁜 일에 손을 대는 것을 말해요.

    집으로 돌아오던 마틸다는 복도에서 끔찍한 상황을 알아채고 떨리는 걸음으로 그대로 지나쳐 레옹의 문을 두드려요. 문을 열어 줄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던 레옹은 결국 문을 열어 줘요. 이 한 번의 선택이 두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아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어요. 마틸다가 문 앞에서 떠는 장면이 이렇게 숨 막히게 이어질 줄은 몰랐거든요.

    레옹과 마틸다가 서로에게 가르쳐 준 것과 악역

    마틸다는 동생을 해친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며 레옹에게 일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요. 레옹은 처음엔 거절하지만 결국 마틸다를 곁에 두게 되지요. 대신 마틸다는 레옹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요. 둘이 함께 모자를 쓰고 유명인 흉내 놀이를 하는 장면에서는 레옹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어요.

    무서운 세상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어 줘요. 한 사람은 아빠 같은 보호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닫혔던 마음을 열어 주는 존재가 되지요. 누군가를 아낀다는 마음을 한 번도 몰랐던 레옹은 마틸다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돼요.

    반대편에는 마틸다의 가족을 해친 경찰 스탠스필드가 있어요. 약을 삼키고 음악을 들으며 목을 꺾는 그의 모습은 섬뜩할 만큼 무서워요. 이렇게 주인공과 맞서는 나쁜 인물을 악역이라고 해요. 이 역할을 맡은 게리 올드먼의 연기는 지금까지도 영화 역사에 남을 악역으로 손꼽혀요.

    제 경험상 게리 올드먼의 악역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게 돼요.

    누아르 속에 숨은 따뜻한 이야기와 감독판

    레옹은 어두운 도시와 범죄자들이 나오는 누아르 영화예요. 누아르는 프랑스 말로 검다는 뜻으로 범죄와 배신이 가득한 어두운 세계를 그린 영화를 말해요. 그런데 이 영화는 총소리 사이사이에 우유 한 잔과 화분과 서툰 웃음 같은 따뜻한 장면을 끼워 넣어요. 그래서 어두운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포근해지는 영화로 기억돼요.

    영화가 끝나고 흐르는 스팅의 노래는 긴 여운을 남겨요. 이 곡은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곡이 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번 극장에 다시 걸렸는데 오래된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재개봉 바람이 불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어요. 오래된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는 재개봉 인기가 처음 크게 일었을 때에도 레옹은 시네마 천국과 함께 성공한 대표 작품으로 꼽혔어요 (출처: 경향신문). 경향신문 재개봉 기사 보기

    극장에서 처음 선보인 판보다 이십 분쯤 더 긴 감독판도 있어요. 감독판은 감독이 처음 의도한 대로 잘렸던 장면을 되살려 다시 엮은 판을 말해요. 감독판에는 극장판에서 빠졌던 두 사람의 일상 장면들이 더 담겨 있어요.

    이제 여기라면 괜찮을 거야 레옹.

    영화의 마지막에 마틸다는 레옹의 화분을 학교 마당 땅에 옮겨 심어요. 늘 떠돌던 화분이 마침내 뿌리를 내리는 이 장면은 레옹이 드디어 쉴 곳을 찾았다는 뜻처럼 느껴져요.

    제가 마지막 화분 장면에서는 한동안 화면을 멈추고 있었어요. 뿌리내린 화분을 보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먹먹했어요.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 보세요.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뿌리를 내릴 땅이 되어 줄지도 몰라요.

    자주묻는 질문

    레옹이 키우던 식물 이름은 무엇인가요

    잎이 넓고 무늬가 있는 관엽 식물로 아글라오네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요. 영화 덕분에 레옹 화분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아졌어요.

    어린 학생이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총격 장면과 무서운 장면이 많아서 어린 학생에게는 알맞지 않아요. 관람 등급을 꼭 확인하고 어른이 된 뒤에 보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어요.

    마틸다를 연기한 배우는 누구인가요

    당시 열두 살이던 나탈리 포트만이에요. 이 영화가 첫 영화였는데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 줬고 훗날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