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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보통 몇 시간 머물다 떠나는 곳이에요. 설레는 여행의 시작이거나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 공항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아홉 달을 산 남자가 있다면 어떨까요. 영화 터미널은 나라가 사라져 버린 한 남자가 공항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예요. 이야기가 참 훈훈하고 따뜻함이 느껴졌던 영화였어요.

터미널 속 빅터에게 사라진 나라와 비자
빅터는 크라코지아라는 작은 나라에서 미국 뉴욕으로 날아온 남자예요. 크라코지아는 영화를 위해 지어낸 나라예요. 그런데 빅터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이 그의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요. 쿠데타는 군대 같은 무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으로 나라의 권력을 빼앗는 일을 말해요.
하루아침에 크라코지아 정부가 무너지자 빅터가 가진 여권은 아무 쓸모가 없어졌어요. 미국은 그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돌아갈 비행기도 뜨지 않았지요. 다른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나라가 내주는 허가 문서가 필요한데 이것을 비자라고 해요. 빅터의 비자도 나라와 함께 사라져 버린 거예요.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볼 때 문밖이 바로 뉴욕인데 나갈 수 없는 빅터의 모습이 유리 벽 너머를 바라보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결국 빅터는 공항 안 환승 구역에 머물게 돼요. 환승 구역은 비행기를 갈아타는 사람들이 나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기다리는 공항 안의 공간이에요. 문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뉴욕인데 빅터는 그 문을 넘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영어도 거의 할 줄 몰랐지요.
공항을 집으로 만든 빅터의 생존법
빅터는 공사 중이라 비어 있는 탑승구를 찾아 의자를 이어 붙여 침대를 만들어요. 배가 고프면 여기저기 버려진 짐 수레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동전을 받아 햄버거를 사 먹지요. 공항 관리자 프랭크가 빅터를 내쫓으려고 이 일을 막아 버리자 빅터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어요. 짐 수레를 돌려주고 동전을 모으는 장면이 이렇게 유쾌할 줄은 몰랐거든요.
빅터는 서점에서 같은 여행 안내 책을 자기 나라 말판과 영어판으로 하나씩 들고 번갈아 읽으며 영어를 익혀요. 손재주가 좋아서 공사 중인 벽을 멋지게 고쳐 놓자 공사 책임자가 그를 몰래 일꾼으로 쓰기도 하지요. 처음엔 이상한 사람 취급하던 청소부와 음식 배달원과 입국 심사 직원들도 하나둘 빅터의 친구가 돼요.
빅터가 공항 사람들을 도와주는 장면 중에는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많아요. 음식 배달원의 짝사랑을 대신 전해 주며 연애편지 배달부가 되기도 하고 약을 들고 온 외국인 손님을 기지를 발휘해 도와주기도 해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 어느새 공항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된 거예요.
제 경험상 낯선 곳에서 처음 말을 걸어 준 사람은 오래 기억에 남아요. 빅터를 도와주는 공항 사람들을 보며 그런 기억이 떠올랐어요.
빅터가 공항에서 버틴 이유는 오직 하나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빅터가 늘 품에 안고 다니던 땅콩 통 안에는 아버지가 모은 재즈 음악가들의 사인이 들어 있었어요. 단 한 명의 사인만 빠져 있었는데 빅터는 그 마지막 사인을 받으러 뉴욕에 온 거예요.
터미널 실화 주인공과 영화의 차이
이 영화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어요. 이란 출신의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라는 남자는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잃어버려 어느 나라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의 공항에서 무려 열여덟 해를 살았어요. 그는 공항 직원들과 친구가 되어 알프레드 경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해요 (출처: 한국일보). 한국일보 실존 인물 기사 보기
나세리는 전쟁이나 박해를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난 난민이었어요. 난민은 목숨이 위험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말해요. 그는 서류가 없어 어느 나라 국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무국적 상태가 되었어요. 무국적은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아 여권도 권리도 없는 상태를 뜻해요.
| 비교 | 영화 속 빅터 | 실제 나세리 |
|---|---|---|
| 머문 곳 | 미국 뉴욕 공항 | 프랑스 파리 공항 |
| 머문 기간 | 아홉 달쯤 | 열여덟 해 |
| 갇힌 이유 | 나라가 쿠데타로 무너짐 | 신분 서류를 잃어버림 |
| 공항에서의 모습 | 일하며 친구를 사귐 | 일기를 쓰고 책을 읽으며 지냄 |
제가 나세리의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영화가 훨씬 무겁게 다가왔어요. 웃으며 보던 장면들이 전혀 다른 얼굴로 보였거든요.
재미있는 건 이 영화가 실제 공항에서 찍은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커다란 격납고 안에 공항 대기실을 통째로 새로 지었어요. 수백 명의 일꾼이 몇 달 동안 매달려 가게와 탑승구와 에스컬레이터까지 실제처럼 만들었대요 (출처: 씨네21). 씨네21 영화 소개 기사 보기 이렇게 영화를 찍기 위해 따로 지은 가짜 장소를 세트라고 해요. 세트를 쓰면 진짜 공항처럼 사람들이 오가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장면을 마음껏 찍을 수 있어요.
누군가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고 느껴지는 날 이 영화를 보면 좋겠어요. 빅터처럼 친절 하나로 버티다 보면 낯선 곳도 어느새 내 자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자주묻는 질문
빅터는 결국 마지막 사인을 받았나요
네 받았어요. 우여곡절 끝에 공항 문을 나선 빅터는 재즈 공연장을 찾아가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마지막 사인을 받아요. 그리고 택시에 올라 이제 집에 간다고 말하지요.
크라코지아는 실제로 있는 나라인가요
아니에요. 영화를 위해 지어낸 동유럽의 작은 나라예요. 실제 나라 이름을 쓰면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일부러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보면 돼요.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인가요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이 없고 웃음이 많아서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좋아요. 친절과 약속의 소중함을 아이와 이야기 나누기에도 좋은 영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