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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처음 만난 여인과 탱고를 춘다면 믿어지시나요. 게다가 그 춤이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춤 장면으로 손꼽힌다면요. 여인의 향기는 이 탱고 장면 하나로 수십 년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예요. 이 영화를 보면서 열정적인 탱고의 매력에 빠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춤보다 더 오래 남는 건 두 사람의 우정이에요.

여인의 향기 속 프랭크와 찰리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
찰리는 장학금을 받고 이름난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성실한 학생이에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명절 연휴에 집에 가는 대신 돈을 벌기로 해요. 그 일은 며칠 동안 한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이었지요.
그 할아버지가 바로 프랭크예요. 프랭크는 군대에서 높은 계급까지 올라갔다가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퇴역 군인이에요. 퇴역은 군대에서 일을 마치고 완전히 물러나는 것을 말해요. 프랭크는 성격이 불같고 말투도 거칠어서 찰리는 첫날부터 쩔쩔매요.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볼 때 처음에는 거친 프랭크가 불편했는데 어느새 그의 말투가 정겹게 느껴졌어요. 사람의 첫인상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새삼 느꼈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프랭크의 뉴욕 여행
프랭크는 찰리를 데리고 갑자기 뉴욕으로 떠나요. 비싼 호텔에 묵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옷을 맞추지요. 프랭크는 시각 장애를 가졌어요. 시각 장애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힘이 없거나 아주 약한 상태를 말해요. 하지만 프랭크는 냄새만으로 사람이 쓴 향수 이름을 척척 맞혀요. 제목의 여인의 향기도 여기서 나왔어요.
프랭크가 빨간 스포츠카를 직접 몰겠다고 우기는 장면도 유명해요. 찰리가 옆에서 방향을 알려 주고 프랭크는 텅 빈 거리를 신나게 달려요. 아슬아슬하면서도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에요. 사실 프랭크가 이 여행을 떠난 데에는 슬픈 속마음이 숨어 있었어요. 찰리는 그걸 알아차리고 위험한 선택을 하려는 프랭크를 온몸으로 막아서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어요. 스포츠카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는데 바로 뒤에 프랭크의 속마음이 나오자 마음이 철렁했거든요.
여인의 향기 최고의 명장면 탱고
식당에서 프랭크는 혼자 앉아 있는 젊은 여인 도나에게 말을 걸어요. 탱고를 배워 보고 싶지만 실수할까 봐 겁이 난다는 도나에게 프랭크는 이렇게 말해요.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예요.
탱고는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춤으로 두 사람이 가까이 붙어 빠르고 절도 있게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에요. 이때 흐르는 곡이 포르 우나 카베사예요. 우리말로 하면 머리 하나 차이라는 뜻인데 이 영화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곡이 되었어요. 광고 음악으로도 자주 쓰일 만큼 지금도 사랑받고 있지요 (출처: 엠비시연예). 엠비시연예 재개봉 기사 보기
앞이 보이지 않는 프랭크는 음악과 도나의 숨결만 느끼며 춤을 이끌어요. 서툴던 도나가 점점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이 그대로 마음에 스며들어요.
제 경험상 이 탱고 장면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처음처럼 가슴이 뛰어요. 저는 그 장면만 따로 여러 번 돌려 보기도 했어요.
알 파치노가 보여 준 프랭크 연기의 힘
프랭크를 연기한 사람은 알 파치노예요. 그는 영화 내내 눈의 초점을 한 번도 맞추지 않은 채 연기해요. 이렇게 역할 속 인물이 되기 위해 실제 그 사람처럼 살아 보며 연기하는 방법을 메소드 연기라고 해요. 알 파치노는 이 역할을 위해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걸음과 몸짓을 오래 관찰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연기로 그는 미국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요. 그 전까지 여러 번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상을 놓쳤기 때문에 더 뜻깊은 상이었지요. 영화는 개봉 스물다섯 해 만에 우리나라 극장에서 다시 상영되기도 했어요 (출처: 서울경제). 서울경제 재개봉 기사 보기
학교 강당을 울린 프랭크의 연설
여행에서 돌아온 찰리에게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친구들이 벌인 장난을 목격했는데 누가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 위원회에 불려 간 거예요. 징계 위원회는 학교 규칙을 어긴 학생에게 어떤 벌을 줄지 정하는 모임이에요.
교장 선생님은 친구들 이름을 대면 장학금과 좋은 대학 추천을 주겠다고 찰리를 흔들어요. 하지만 찰리는 끝까지 친구를 팔지 않아요. 그때 프랭크가 강당에 나타나 찰리 편에 서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연설을 해요. 쉬운 길 대신 옳은 길을 고른 이 소년이야말로 학교가 키워야 할 사람이라고요. 강당을 가득 채운 박수 소리는 관객 마음속에서도 똑같이 울려 퍼져요.
제가 이 연설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보고 있었어요. 끝까지 친구를 지킨 찰리가 너무 대견했거든요.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한 걸음 내딛는 게 두려운 날이라면 프랭크의 말을 떠올려 보세요. 스텝이 조금 엉켜도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의 탱고일지 몰라요.
자주묻는 질문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탱고 곡 이름은 무엇인가요
포르 우나 카베사라는 곡이에요.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탱고 가수가 만든 곡으로 영화 이후 피겨 스케이팅이나 광고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알 파치노는 정말 앞이 안 보이는 척만 했나요
네 실제로는 앞을 볼 수 있어요. 눈의 초점을 흐리게 두고 연기해서 넘어지거나 부딪힐 뻔한 적도 있었다고 알려질 만큼 역할에 깊이 빠져 있었어요.